좁은 문

2008. 9. 23. 00:13


내가 가고 싶은 과는 한 해에 6명 밖에 뽑지 않는 아주 가기 힘든 곳이다. 그 곳에 들어가려면 성적도 좋아야 하고 성격도 좋아야 하고 인품도 좋아야 하고 평판도 좋아야 하는 아주 특별하고 까다로운 문이다.

내가 어쩌다 그 과에 가고 싶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고 싶어지고 나서는 어느새 깊숙이 진심이 되어 버려서 그 문에 들어가지 못하면 내가 다른 문으로 들어가고자 할 수 있을지 상상이 잘 되질 않는다.

이럴 때면 나의 부족한 두뇌와 머리 회전 능력을 탓하게 되는데, 이미 지난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최소한 과학고 정도는 나왔어야 되는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계속 든다. 과학고가 입시 전문고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과학고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달라서 비록 똑똑한 아이 중 과학고에 들어간 아이와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있어도 3년 동안의 심도 깊은 수업에 과학고에 들어간 아이는 천재가 되고, 그 안에서는 힘들고 괴로운 파도와 싸워야 했지만 아이는 용자가 되어 졸업할 수 있다.

평소에는 그러한 능력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아도 이 곳처럼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최대 능력으로 맞서야 하는 동산에서는 용자의 경험치가 산처럼 다가와 그들의 두뇌 회전 속도는 범인이 쉽사리 따라잡을 수가 없으니 진작에 서울에 살지 않았음을 한탄해야 하는지 진작에 과학고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나를 탓해야 하는지 머리가 혼란하고 정신이 우물대어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꿈을 쫓아 나가는 길이 힘차고 즐겁다고 말한 성현이 있었는지- 실제로 꿈을 쫓는 나는 달랑대며 거리를 알 수 없게 만드는 모빌같이 열쇠가 잠긴 문을 쳐다보며 발버둥쳐보지만, 내년이되고 2010년이라고 숫자가 넘어가며 사람들이 보신각의 종을 울릴 때면 나는 뒷간에 조용히 앉아 눈물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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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년동안 같은 동아리를 했던 사실은 나보다 한살 어리지만 동기니까- 친구와 밥을 먹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했는데도 단둘이 밥을 먹으러 나온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둘이서 깔깔대며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담소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4시간이 훌쩍지나 9시가 되었다. 수다를 많이 떨어 쉽게 피로해지는 내 눈은 벌써 충혈 기운을 보이는데도 약간은 아쉬운 마음에 자리에 그림자를 남길 뻔 했다. 아쉽지만 곧 다시 만나요- 다음번에는 다른 친구도 함께 셋이 놀기로 하고  굿바이-

사람이 잃을 때가 되면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 했던가-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이라서인지 학교에서도 만날 수 있는 친구들과의 약속은 뒷전으로 미루기에 일쑤였다. 게다가 어찌 그리 맡은 일도 많은지 아니면 일복이 터지는 것인지 은근히 할일은 넘쳐나고, 정신없는 학사일정 속에 흩어지는 정신을 다잡고 180명이 떠내려가는 물결 속에 파묻혀 같이 가기 위해서 나는 지금의 즐거움은 조금씩 뒤로 미루어야 했기 때문이었다고 하고 싶다.
이제는 졸업을 앞두니 그동안 자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조금은 소홀했던 친구들과 한번이라도 더 만나고 한번이라도 더 얘기하고 싶어 여러가지 잡일로 바쁜 요즘에도 자꾸만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다. 만나고 보고 인사하고 또 만나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순간순간이 어찌나 아쉬운지- 하지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우리는 소중한 오프를 쪼개어 다시 만날 것을 알기에 아쉬워도 다시 만나자며 웃으며 인사할 수 있다.


아아 사실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정신이 없다-
나는 글쓰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본과에 와서 제일 아쉬웠던 것이 글쓸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2학기는 친구들에게는 힘겹고 괴로운 시기였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꽃망울에 맺힌 이슬처럼 내 정신없지만 즐거운 삶에 화룡점정과도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그 길의 연장선에서 그런 기회를 잃기 전에 부지런히 블로그에도 발자국을 남기는 중이다.
피곤해서 정신이 없어도 뭐라고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도-
이렇게 이렇게 도장을 하나, 둘,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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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혹 뉴스나 신문에서 볼 수 있는 직업과 관련된 여러가지 질병과 사고에 관련된 의학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난 두 주동안 복잡한 화학물의 이름과 그에 딸린 수많은 부작용과 합병증과 그 물질들이 노출될 수 있는 여러가지 종류들을 외우고 나니 머리에 뒤섞여 비빔밥처럼 물컹해진 느낌이 가득한 것은 어쩌나-

하지만 필요한 때에 의심할 수 있고 요구될 때에 찾아볼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것이 이번 수업의 진정한 목표였던 만큼 일단은 여기에서 잠시 한가득 숨을 쉬련다.

이번 직업환경의학을 마치고 내가 겪게 된 직업병이라면, 모든 장소에서 호흡기를 약간이라도 자극하는 괴이한 미세물질이나 자극성 냄새가 다가오는 순간 이 물질의 정체를 떠올리며 관련된 부작용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원래부터 길을 걷다 자동차라도 지나간다치면 매연이 사라질때까지 숨을 멈추고 있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이제는 그 행동에 더불어 '자동차의 매연은 질소산화물과 일산화탄소...'로 시작되는 갖가지 안좋은 면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숨을 쉬는데 갑자기 호흡기를 자극하는 농도 짙은 불쾌공기를 들이마시기라도 하면 '미세먼지(PM10)는 심혈관계질환을 비롯한 여러가지 합병증을 유발하고...'로 시작되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곤 한다.

원래도 냄새와 숨에 민감했던 나였으니, 조금은 더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여겨도 되려는지... (笑)


이래저래 4학년 2학기의 과목들은 우리에게 인생을 설계하게 하고 사회와 맞서게 하는 무언가를 전해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대체의학과 한의학을 배우고 의료윤리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 직업환경의학과 같은 마이너한 과목도 배우고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의학의 새지평에서는 미래 사회와 미래 의학에 대해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 :)

이제 2주 남은 수업도 열심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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